“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의 인치심을 경험합니다. 진리의 말씀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성령의 인치심을 주지 못합니다. 진리의 말씀 외에 다른 것에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방언이나 예언, 환상이나 기적조차 진리의 말씀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겉으로 진리의 말씀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론 다른 것들을 앞세우는 교회와 성도들이 많습니다. 소위 성령운동이 그러합니다. 진리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성령운동은 거짓의 아비인 마귀를 향하도록 합니다. 점차 진리의 말씀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진리의 말씀에 감동함으로 일어납니다.
왜냐, 성령은 약속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은 곧 약속의 말씀인 겁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미 이루어진 말씀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겐 곧 이루어질 약속의 말씀입니다.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의 인치심을 받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치심은 모호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약속을 붙잡게 됩니다. 고대 사회에서 인침(도장찍음)이 확실한 보증이었듯이, 성령의 인치심은 확실한 보증입니다. 성령 그 분 자체가 약속의 성취인 동시에,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인치심 확증하지 못한 사람의 믿음은 언제나 제한적입니다. 나름 뜨겁게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한계는, 자신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성령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치심을 모르거나 확증하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배를 드리신 하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이야기를 살지 못합니다. 이들은 교회 직분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이게 지금 우리들의 문제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분명한 사실이라면 성령의 인치심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근데 어떻게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 그 자신이 성령의 인치심을 확증하지 못할 수 있으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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