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은 말입니다. 아무나 방언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말이기 때문입니다. 방언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이니 하나님을 향해서만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방언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방언은 말입니다. 말에는 대상이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방언의 대상은 하나님이시고, 내용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방언을 알아들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방언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도 있기 때문입니다. 방언을 통역(해석)해야만 한다는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됩니다. 방언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해도 됩니다. 그러나 늘 그럴 수는 없습니다. 교회일꾼이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기도를 한다면 교회가 혼란스러워집니다. 방언을 통역하는 선물을 받아야 합니다. 영적인 것을 사모한다면, 통역하는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방언을 통역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방언을 통역할 수 있습니다. 통역하는 방언이든, 통역하지 못하는 방언이든 내용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방언하는 게 좋습니다.
방언은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말입니다. 방언할 때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비록 방언의 내용은 깨닫지 못해도, 방언하는 마음은 분명해야 하는 겁니다. 이런 마음을 가질 때에만 방언을 절제할 수 있습니다. 예배에서나 모임에서 방언은 절제되어야 합니다. 만일 이런 절제가 없다면 방언으로 인해 자신과 다른 사람이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방언은 말입니다. 방언을 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냐에 따라 성령의 방언일 수도 있고 마귀의 방언일 수도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와는 달리 지금에 와서는 마귀에게 속아서 방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방언만이 아니라 통역(예언)도 마귀에 속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용은 성령의 방언과 다르지 않습니다. 마귀의 방언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방언을 합니다. 마귀의 방언을 분별하는 건 방언 자체가 아닙니다. 방언하는 사람의 영을 분별하는 겁니다. 영의 어떠함은 마음의 열매로 드러나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를 담은 마음을 가진 사람의 방언은 성령의 방언입니다. 성령의 열매란, 그리스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마음의 열매는 단순히 마음이 평안해지는 현상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의 열매는 없고 시기와 다툼, 수군거림과 음란, 거짓말이 여전한 사람의 방언은 마귀의 방언일 수 있습니다.
방언은 말입니다. 억지로 말을 하면 오히려 문제가 생기듯이, 억지로 하는 방언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킵니다. 시끄러운 깡통소리에 불과하기도 하고, 마귀에게 속아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한편, 방언을 억제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서 방언을 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큰 문제를 앞두고 힘에 부치면 방언으로 기도하곤 합니다. 가끔 꿈에서 방언하다가, 방언 소리에 놀라서 깨곤 합니다. 때론 방언 통역으로 알지 못하던 것을 알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하나님의 일에 대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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