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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과 관련해서
이상호 2015-10-28 추천 1 댓글 0 조회 407

이스라엘(남유다)이 바벨론에게 망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왕과 신하들, 백성들은 한 마음으로 바벨론에게 대항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들먹이면서 유다의 승리를 예언해줬습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바벨론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몰아내실 거라고 기대를 했던 겁니다.

근데 예레미야는 바벨론에게 항복하자고 했습니다. 그는 친바벨론파로 낙인이 찍혀서 여기저기로 끌려 다니면서 욕을 당했습니다. 왕과 신하들, 백성들만이 아니라 선지자들까지도 예레미야를 욕했습니다. 근데 이스라엘이 무너졌습니다. 예루살렘과 성전이 황폐화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되었습니다. 성경은 예레미야를 참된 선지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친일파를 욕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친중파, 친미파도 욕하지 않습니다. 좌파도 우파도 욕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욕하는 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모든 태도들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어떤 태도든지 괜찮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모든 분파들에게 욕을 먹습니다. 예레미야가 욕을 먹은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저기서 욕을 먹은 예레미야는 고독했고, 눈물이 많았습니다.

‘조국’교회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우리나라’교회라는 말도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교회가 민족에게 속했거나 국가에 속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민족과 국가에 대한 성경의 태도는 냉소적입니다. 그렇다고 민족과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로 돌리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게 바로 이겁니다.

육당 최남선에 대한 평가가 사람들마다 엇갈립니다. 시각에 따라 친일파일 수도 있고, 애국자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대통령처럼 사심을 가지고 역사를 평가하려고 하지 않는 한, 저마다 가진 역사관에 따른 평가 자체는 인정하는 게 좋습니다. 민족과 국가의 이해에 따라 특정 역사관을 지지해서 다른 쪽 역사관을 뭉개고 정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역사관이 엇갈릴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서입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이스라엘에 붙이신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국가는 무너졌고 이스라엘 민족은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했기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해서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겁니다. 만일 하나님을 의지했다면 역사는 다른 이야기 되었을 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에 일어나는 일들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리더이신 한 분이 역사교과서와 관련해서 ‘기독교의 핵심가치는 자유’라고 하셨는데, 성경에서 지지받을 수 없는 말입니다. 기독교의 핵심가치는 진리이고, 그에 따르는 가치가 자유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을 의지(경외)하는 겁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역사 처음에서부터 역사 끝까지 기록한 역사교과서입니다. 성경 외에는 다른 성경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역사교과서는 하나, 성경입니다. 다른 책을 성경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단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다른 역사교과서와는 달리, 성경 첫 문장에서부터 성경의 독특한 역사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의 역사관을 교회 밖의 사람들이 읽을(긍정할) 수 있는 역사교과서로 풀어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진리’를 ‘역사’로 풀어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어설프게 조직신학자나 철학자가 좋아하는 방식인 개념을 도식화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결국 해석의 문제이고, 해석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식의 성장이나 진보 혹은 문화적 유행의 변화에 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독재자들이 좋아하는 말, ‘올바른’ 해석이 필요합니다.

‘올바른’의 가장 중요한 태도는, 누군가 말했듯이 ‘현재의 역사는 없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우리를 규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퍼스Peirce가 말했던 것처럼 ‘그 누구도 현재의 역사를 쓰지 않았다’는 말처럼 되어야 합니다. 가능한 오늘과 밀접해있는 현대나 근대에 대해서는 해석을 보류하는 게 좋습니다. 대신 ‘오늘’을 규정하는 건 성경이야기가 드러내고 있는 진리입니다.

성경이야기 전부가 그렇지만, 그 중에서 특히 선지자들이 쓴 선지서는 진리로 역사를 해석하는 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정의를 구하라’(1:7)고 일갈하면서 뱉은 내용들이 그러하고, 아모스가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5:24)가 했던 말이 그러합니다. 선지자들이 꿈 꾼 나라는 구름 위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는 나라였습니다. 당연히 선지자들의 역사관 또한 ‘실재적’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이 진단하는 바는, 이스라엘이 우상숭배 죄로만 망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상숭배 못지않은 악한 일들이 있었기에 망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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