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만이 아니라 미래도, 또 우리가 살았던 과거까지도 시간은 살아납니다. 산 자의 하나님(눅20:38)이란, 죽은 시간을 가진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시간을 가진 사람의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산 시간이란 하나님을 향해 있는 시간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는 역사가 되고,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역사의 성격이 형성됩니다. ‘지금’은 ‘오늘’과 같은 말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강조되는 시간이 오늘입니다. 오늘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리의 과거가 어떠한 과거였든지 간에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오늘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리의 미래가 시간에 제한되지 않고 영원하리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시간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게 매이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인과론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창조의 시간을 살아가는 겁니다. 예수님이 선언하신 하...나님 나라의 시간이 그렇습니다. 오늘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지금 우리에게 돌격하십니다. 시간을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결산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돌격해 오실 때,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시간과 저 시간에는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같다는 걸 확인하게 될 겁니다. 지금 살아가는 게 힘들다면, 하나님께 나아가 도움을 청하는 겁니다. 오늘의 고통은 오늘 하나님께 고백하는 겁니다. 내일의 고통은 내일 하나님께 고백하는 겁니다. 만일 오늘을 놓치고 그냥 지나간다면,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는 걸 두고 ‘절망’이라고 부릅니다. 근데 지금 우리 몸 덩어리가 살아있어서, 우리의 육성과 몸짓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우리에게 하나님의 시간을 열어두신 겁니다. 다른 시간들을 정리해야 하나님의 시간을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만나는 걸 우선해야 합니다. 어떤 유대인 랍비가 ‘이스라엘의 내면 역사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그 분의 도착을 기다리는 역사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살아갈 시간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들이 성취되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성취의 장에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분명 산 자는 들어가서 성취를 누리게 됩니다. 지금 이미 그 성취의 장에 들어가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세상 어떤 사람의 열정도 이런 사람의 열정보다 강하지 못하고, 세상 어떤 체제보다도 이런 사람의 정신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세상 어떤 정의보다 이런 사람의 의를 능가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을 통해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사야가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와서 만민의 기치로 선다”(이사야 11:10)고 예언한 일들이 이런 사람을 통해서 계속될 겁니다. 누군가가 시간과 관련해서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을 강조했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말입니다. 시간의 이야기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시간의 이야기를 창조하시는 겁니다. 믿음이란, 오늘 하나님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능력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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