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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BS몸(6)-몸과 신화
이상호 2014-03-26 추천 1 댓글 0 조회 279
 

TCBS (6)-몸과 신화

 

Q. 믿음생활에서 율법주의나 행위신앙으로 치우치는 모습도 신화적인 모습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나요? 교회생활 가운데 신화적인 모습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A. 신화에는 신화를 낳은 사람들이나 신화를 좇아가는 사람들의 세계관이 들어가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형성된 어떤 을 언어로 담아서 표현한 겁니다. 철학자들이 지향하는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 수는 있지만, 신화를 만든 사람들 나름의 합리성이 있지만 신화에는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에 대한 설명과 같은 역사성은 결여되어 있습니다. 유사한 것으로, 영지주의가 있습니다. 영지주의는 합리성을 흉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화와 영지주의의 공통점은 양자 모두가 비밀을 다루고 있다는 겁니다. 천지의 기원에 대한 비밀, 선과 악의 기원에 대한 비밀, 우리 현실에서 활동하는 신들의 행위에 대한 비밀 등입니다.

 

바로 이 비밀이 특별한 의식altar(祭儀)’을 만들어냅니다. 고대 종교에서 사람까지도 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건 이런 의식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신화에서 드러나는 신들의 폭력성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가 종교의식의 기원이 되면서, 종교성의 뿌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에게도 여지없이 나타났습니다. 시내산 아래에 있던 백성들이 경험한 것은 산꼭대기를 태우시고 금송아지를 파괴하시고 징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자연스레 이스라엘의 믿음을 신화적인 믿음으로 만들기에 족했습니다. 12지파의 거주지 중심에 성막(회막)이 있었지만,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법궤)이 아니라 애굽신화이거나 혹은 시내산신화였습니다.

 

율법주의라는 말을 정의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질문자가 의도하는 율법주의는 행위주의와 같은 말일 겁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신화적인 생각에서 율법주의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율법주의에는 어느 정도 패권주의가 내재해있습니다. 바벨론 신화를 예를 들면, 마르둑이 신들과의 전쟁에서 이김으로 우주가 발생하였다고 한다면, 신화를 좇아가는 사람들은 늘 싸워서 이기는 걸 습득하게 됩니다. 이게 어떤 의식(제의)으로 행해진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승리한 신과 같은 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지는 신들에 대해 혹은 의식을 행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패권의식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런 패권의식이 한국교회 안에 많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의 정신이나 본질을 추구하기 보다는, 그 계명을 준수하는 형식에만 치중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보다도 더 무한경쟁이 되고만 교단과 교단의 경쟁, 교회와 교회의 경쟁, 성도와 성도의 경쟁이 이런 경향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질문자가 질문하는 것처럼, 개 교회 안에도 상당히 많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예를 들면 1)주일성수가 그렇습니다. 2)새벽예배를 비롯한 예배들이 그렇습니다. 3)헌금이 그렇습니다. 4)봉사가 그렇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것인데 반해, 한국교회는 사람을 향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의 호평으로 대체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을 하면 은혜 받았다고 합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떤 행위를 하든지 교회에서 예배를 잘 드리고 헌금을 잘하면 경건한 성도라 여겨집니다. 성도들이 청중들 앞에서 말하는 간증의 내용도 하나님 나라와 그의 정의와는 무관하게 개인의 출세나 소유와만 연결되고 있습니다.

 

Q. 성공한 사람들의 처세술을 탐독하거나, 유행하는 스타일과 생활방식을 좇아 사는 것 또한 현대적 의미의 신화에 영향을 받은 것일까요?

 

A. 그렇습니다. 세상신화를 좇아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신화에는 패권주의가 녹아 있다고 했습니다. 현대의 신화는 하나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입니다. 지금 진행되는 세계화의 원동력은 사람의 정신이 아니라 돈에 대한 욕망입니다. 만일 돈이 되지 않는다면 누가 세계화를 원하겠습니까? 돈만 더 가질 수 있다면, 세계화가 아니라 지역화까지도 원합니다. 그래서 지금 세계는 세계화와 블록화가 맞닿아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전쟁을 했다고 해도 누가 이길지는 분명합니다. ‘입니다. 어느 나라도 이기지 못하고 이 이깁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돈입니다. 또한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것도 또한 돈입니다. 문제는 돈이 고정되어서, 사람이 돈을 제어할 수만 있다면 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미 돈은 자생력을 가지고 스스로 증식해나가고 있습니다. 누구도 돈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어느 국가도, 어느 경제단체도 돈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제가 이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트렌드는 이란 걸 강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게 결혼입니다. 미혼 남녀들이 배우자에게서 바라는 바 첫째가 이란 걸 알 겁니다. 처세술도 다름 아닌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한 처세술입니다. 개개인의 소명이나, 비전이나, 재능을 풀어내는 직장이 아니라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한 직장을 선호합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산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첫째는, 모두가 하는데 아니오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둘째, 돈에 대한 욕망,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욕망을 포기해야 하는 게 힘듭니다. 셋째, 우리 주변에는 믿음의 롤모델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가까운 사람 누군가가 믿음으로 살아내는 걸 본다면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근데 한국교회는 불행하게도 그런 그리스도인이 희귀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는 데에만 고착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의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왜곡되어 있습니다. , 여러분 중에 모태신앙이거나, 교회생활을 오래 하신 분 중에서,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와 정의를 배운 적 있습니까? 아니면 그런 삶을 배운 적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도 또한 우리처럼 무지 가운데 살아가게 될 겁니다. 세상을 좇아가지 말고 말씀을 좇아가야 합니다. 마치 이 말씀이 보물인 것처럼 우리가 가진 돈이나 시간, 건강까지도 다 팔아서라도 말씀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 말씀을 재산으로 삼는 사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위하여 하늘곳간에 보물을 쌓으실 겁니다.

 

 

Q. 예배가 의식화 되어 있는 것도 신화적인 영향이라고 할 수 있나요?

 

A. 그렇습니다. 앞 질문에 대한 답에서 이것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가 의식화儀式化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참예배는 신화적인 예배와는 다릅니다. 예배가 의식이 아니라 만남이 됩니다. 기도가 주문이 되는 게 아니라 대화가 됩니다. 찬송이 파동이 아니라 울림이 됩니다. 설교가 이론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조명하는 빛이 됩니다.

 

Q. 저의 삶 속에 신화적인 요소가 많구나 하고 느낍니다. 가끔 신화적 요소를 기반으로(심리학적으로) 나의 잘못된 모습을 보게 됨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준이 신화이지만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된 수단이 된 경우, 이러한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나요?

 

A. 자신의 삶에서 신화적인 요소를 발견한다는 건 정말 고무적인 일입니다. 요한일서 끝 구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 하라”(요일5:21) 신화는 곧 우상입니다. 모든 우상은 신화에서 비롯되고요. 모든 신화는 곧 욕망에서 나오고요.

 

근데 가끔은 이런 신화적인 요소가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데 도움이 되곤 합니다. 바울이 아테네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들은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지만 나는 아는 신을 섬긴다. 너희가 섬기려는 그 신이 누군가, 내가 섬기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17:23 이하) 신화의 의식(제의)가 우리를 예배로 이끌기도 하고, 신에 대한 두려움이 회개로 이끌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건 어디까지나 믿음의 초보에 있을 때에만 있어야지, 그 후에는 끝나야만 합니다. 바울이 쓴 편지들의 메지지가 바로 그겁니다. 왜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면서 복음을 멀리하느냐 하는 겁니다. 믿은 지 오래된 사람이라면, 이런 신화적인 믿음에서 벗어나서 복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치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면서 모든 것들을 굴러가게 한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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