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해
윤성덕
2012-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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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지저스 아미 컨퍼런스 때 초대 대통령이셨던 이승만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분이 초대 대통령이셨던 것과 비리로 인해 물러나신것 외
에 그리 아는 것이 없었는데 이번에 그분의 신앙에 대해 알게 되어 조금
씩 올려 보려 합니다.
1875년 3월 26일 황해도 평산 출생. 세종대왕의 형이었던 양녕대군의
16대손, 5대조 이후 벼슬을 못한 몰락한 왕손. 6대 독자. 2세 때 서울로
이주.
6세 때 천자문 완독, 이후 왕족들의 학교에서 최우수 성적, 19세까지
과거시험 준비를 했으나 1894년에 과거 시험이 폐지되므로 감리교 선교
사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 입학. 그러나 어머니께서 독실한 불교신
자셨기 때문에 절대 '야소교'는 믿지 않겠다고 약속. (그러나 학당에서의
교육과 선교사들의 설교를 통해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알게 되었다고 함.)
입학 6개월 만에 배재학당의 영어 교사로 임명.
"그 학교에 입학할 당시 나의 가장 큰 욕심은 거기서 영어 한가지만을 잘
배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웠
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정치적 자유의 개념이었다..."
1897년 배재학당 종강식 때 Independence of Korea라는 제목으로 영어
연설.
1898년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신문 주간 협성회회보 발간.
그리고 신문과 만민 공동회 연설가로 활동.
1899년 1월 고종을 폐위하고 민주국가 건설을 시도하는 계획이 발각되
어 한성감옥에 투옥. 사형 선고 받음.
한성감옥의 죄수 1인당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0.76 제곱미터.
1899년 1월 "나는 처음으로 감방에서 "오 하나님, 우리 조국을 구해주시
옵소서, 나의 영혼을 구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 그랬더니, 금방
감방이 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았고 나의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평안
이 깃들면서 나는 완전히 변한 사람이 되었다."
1899년 7월 서양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형.
1902년 12월 28일 죄수들과 간수들을 전도하여 감옥에서 예배 시작.
생지옥 같던 한성감옥을 복당(福堂)이라고 부름.
"나는 6년 동안의 감옥살이에서 얻은 축복에 대해서 영원히 감사할 것이
다."
(당시 한성감옥은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전염병이 도는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1903년 5월 "옥중 전도" : "성신이 나와 함께 계신 줄 믿고 마음을 점점
굳게 하여 영혼의 길을 확실히 찾았으며, 작년 가을에 괴질(콜레라)이 옥
중에 먼저 들어와 사오일 동안에 육십여명을 눈 앞에서 끌어내릴 새, 심
할 때는 하루 열일곱 목숨이 앞에서 쓰러질 때에 죽는 자와 상통하며 그
수족과 몸을 만져 시신과 함께 섞여 지냈으나, 홀로 무사히 넘기고 이런
기회를 당하여 복음 말씀을 가르치매 기쁨을 이기지 못함이라.
1903년 8월 "예수교가 대한 장래의 기초" : "부럽도다, 저 개명한 나라들
에서는 사람의 몸이나 집안이나 나라가 모두 같이 하나님의 도리로써
구원을 얻었고 저 열리지 못한 나라들에서는 사람의 몸이나 집안이나
나라가 모두 사람의 도로 인하여 고초와 환란 멸망을 면하지 못하여도
종시 깨닫지 못하고... 예수교가 가는 곳마다 변혁하는 힘이 생긴다...
예수교 외에는 더 좋은 씨도 없고 더 좋은 밭도 없으니"
1903년 9월 "두 가지 편벽됨" : "사람의 극히 어려운 지경은 곧 하나님이
감화시킬 기회라 하나니 비교하건대 논고에 물이 마르고 뜨거워 고기가
살 수 없게 된 후에야 스스로 새 물길을 얻어 강과 바다를 찾아갈지라...
이 세상은 우리의 잠시 사는 논고물이라. 다소 태평안락한데 사는 사람들
도 바다같이 영원히 마르지 않을 생수를 찾기에 게으르지 않컨대, 하물며
이 물이 마르고 흙탕되는 도탄 중에 들어 어찌 새 물줄기를 찾지 아니하
리오..."
"대한 사람의 새 물줄기는 예수 교회라. 이 교회가 날로 흥왕함은 더 말할
것 없으려니와 아직까지도 저 불쌍한 사람들을 다 기회를 주어 우리와 같
이 생활샘으로 나오지 못하게 함은 실로 다 우리 신이 부족함이요 사랑이
부족함이라..."
1904년 8월 "대한 교우들의 힘쓸 일" : "슬프다. 우리나라의 실낱같은 혈
맥은 다만 예수교회에 달렸거늘 우리 교우들은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혹 알고도 아직 힘이 자라지 못하야 그러한지... 바라건대 우리 교우들은
지뢰를 밟고 적진에 들어가는 저 군사들을 본받아 일심으로 나아가 적군
을 하나씩이라도 항복받기로 힘쓸지라. 우리의 적군은 다른 사람이 아니
라 다만 진리를 알지 못하고 방해하려 하는 자며 우리 군기는 다른 것이
아니라 성경 한 가지 뿐이니... 동포와 나라를 구제하려 하면 정치, 법률
에 있지 아니하고 교화로써 사람의 마음을 풀어놓음에 있는 줄로 깨닫게
하여 하나라도 돌아와 우리와 함께 일꾼이 될진대... 얼마만에 모두 충군
애군하며 자주독립하는 동포가 될지니..."
"복당 동지"
이승만
신흥우
이상재 : 훗날 YMCA 운동에 전념.
이원긍 : 조선 선비의 최고 명예인 대제학 출신. 옥중에서 처형.
유성준 : 유길준의 동생.
이동녕
이종일 : 제국신문 사장.
이준 : 한성 재판소 검사보. 헤이그 밀사.
안국선 : 소설 금수회의록의 저자.
양의종
정순만
박용만
김정식 : 경무국장 출신으로 후에 동경 YMCA를 세움.
(이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나라가 이런 기초 위에 세워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주님께 대한 감사와 경배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인해서도 감사하면서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해요. 샬롬.)
들었습니다. 그분이 초대 대통령이셨던 것과 비리로 인해 물러나신것 외
에 그리 아는 것이 없었는데 이번에 그분의 신앙에 대해 알게 되어 조금
씩 올려 보려 합니다.
1875년 3월 26일 황해도 평산 출생. 세종대왕의 형이었던 양녕대군의
16대손, 5대조 이후 벼슬을 못한 몰락한 왕손. 6대 독자. 2세 때 서울로
이주.
6세 때 천자문 완독, 이후 왕족들의 학교에서 최우수 성적, 19세까지
과거시험 준비를 했으나 1894년에 과거 시험이 폐지되므로 감리교 선교
사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 입학. 그러나 어머니께서 독실한 불교신
자셨기 때문에 절대 '야소교'는 믿지 않겠다고 약속. (그러나 학당에서의
교육과 선교사들의 설교를 통해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알게 되었다고 함.)
입학 6개월 만에 배재학당의 영어 교사로 임명.
"그 학교에 입학할 당시 나의 가장 큰 욕심은 거기서 영어 한가지만을 잘
배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웠
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정치적 자유의 개념이었다..."
1897년 배재학당 종강식 때 Independence of Korea라는 제목으로 영어
연설.
1898년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신문 주간 협성회회보 발간.
그리고 신문과 만민 공동회 연설가로 활동.
1899년 1월 고종을 폐위하고 민주국가 건설을 시도하는 계획이 발각되
어 한성감옥에 투옥. 사형 선고 받음.
한성감옥의 죄수 1인당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0.76 제곱미터.
1899년 1월 "나는 처음으로 감방에서 "오 하나님, 우리 조국을 구해주시
옵소서, 나의 영혼을 구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 그랬더니, 금방
감방이 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았고 나의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평안
이 깃들면서 나는 완전히 변한 사람이 되었다."
1899년 7월 서양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형.
1902년 12월 28일 죄수들과 간수들을 전도하여 감옥에서 예배 시작.
생지옥 같던 한성감옥을 복당(福堂)이라고 부름.
"나는 6년 동안의 감옥살이에서 얻은 축복에 대해서 영원히 감사할 것이
다."
(당시 한성감옥은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전염병이 도는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1903년 5월 "옥중 전도" : "성신이 나와 함께 계신 줄 믿고 마음을 점점
굳게 하여 영혼의 길을 확실히 찾았으며, 작년 가을에 괴질(콜레라)이 옥
중에 먼저 들어와 사오일 동안에 육십여명을 눈 앞에서 끌어내릴 새, 심
할 때는 하루 열일곱 목숨이 앞에서 쓰러질 때에 죽는 자와 상통하며 그
수족과 몸을 만져 시신과 함께 섞여 지냈으나, 홀로 무사히 넘기고 이런
기회를 당하여 복음 말씀을 가르치매 기쁨을 이기지 못함이라.
1903년 8월 "예수교가 대한 장래의 기초" : "부럽도다, 저 개명한 나라들
에서는 사람의 몸이나 집안이나 나라가 모두 같이 하나님의 도리로써
구원을 얻었고 저 열리지 못한 나라들에서는 사람의 몸이나 집안이나
나라가 모두 사람의 도로 인하여 고초와 환란 멸망을 면하지 못하여도
종시 깨닫지 못하고... 예수교가 가는 곳마다 변혁하는 힘이 생긴다...
예수교 외에는 더 좋은 씨도 없고 더 좋은 밭도 없으니"
1903년 9월 "두 가지 편벽됨" : "사람의 극히 어려운 지경은 곧 하나님이
감화시킬 기회라 하나니 비교하건대 논고에 물이 마르고 뜨거워 고기가
살 수 없게 된 후에야 스스로 새 물길을 얻어 강과 바다를 찾아갈지라...
이 세상은 우리의 잠시 사는 논고물이라. 다소 태평안락한데 사는 사람들
도 바다같이 영원히 마르지 않을 생수를 찾기에 게으르지 않컨대, 하물며
이 물이 마르고 흙탕되는 도탄 중에 들어 어찌 새 물줄기를 찾지 아니하
리오..."
"대한 사람의 새 물줄기는 예수 교회라. 이 교회가 날로 흥왕함은 더 말할
것 없으려니와 아직까지도 저 불쌍한 사람들을 다 기회를 주어 우리와 같
이 생활샘으로 나오지 못하게 함은 실로 다 우리 신이 부족함이요 사랑이
부족함이라..."
1904년 8월 "대한 교우들의 힘쓸 일" : "슬프다. 우리나라의 실낱같은 혈
맥은 다만 예수교회에 달렸거늘 우리 교우들은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혹 알고도 아직 힘이 자라지 못하야 그러한지... 바라건대 우리 교우들은
지뢰를 밟고 적진에 들어가는 저 군사들을 본받아 일심으로 나아가 적군
을 하나씩이라도 항복받기로 힘쓸지라. 우리의 적군은 다른 사람이 아니
라 다만 진리를 알지 못하고 방해하려 하는 자며 우리 군기는 다른 것이
아니라 성경 한 가지 뿐이니... 동포와 나라를 구제하려 하면 정치, 법률
에 있지 아니하고 교화로써 사람의 마음을 풀어놓음에 있는 줄로 깨닫게
하여 하나라도 돌아와 우리와 함께 일꾼이 될진대... 얼마만에 모두 충군
애군하며 자주독립하는 동포가 될지니..."
"복당 동지"
이승만
신흥우
이상재 : 훗날 YMCA 운동에 전념.
이원긍 : 조선 선비의 최고 명예인 대제학 출신. 옥중에서 처형.
유성준 : 유길준의 동생.
이동녕
이종일 : 제국신문 사장.
이준 : 한성 재판소 검사보. 헤이그 밀사.
안국선 : 소설 금수회의록의 저자.
양의종
정순만
박용만
김정식 : 경무국장 출신으로 후에 동경 YMCA를 세움.
(이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나라가 이런 기초 위에 세워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주님께 대한 감사와 경배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인해서도 감사하면서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해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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