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치라”(요한복음 8:7)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음행하다가 붙잡힌 여자를 정죄하고 돌로 쳐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으로 다 돌아갔습니다. 어른으로부터 젊은이까지 다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에게서 트집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미워해도 양심은 있었던 겁니다. 양심만 있었지 믿음은 없었습니다. 반면 음행한 여자는 예수님에게 놀라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돌아간 사람들처럼 이 여자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까요? 양심의 가책이 아니라 회개를 했을 겁니다.
양심의 가책은 죄의식이나 허물의식에 가깝습니다. 자신에게 죄가 있다, 허물이 있다는 것에 대한 내면의 반응입니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터득한 윤리나 철학, 종교적인 틀에 의해 만들어진 양심에 따라 규정된 혐의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가진 사람은 혐의에 따른 징계를 각오합니다. 양심의 가책이 큰 사람일수록 내면의 고통이 큽니다.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크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더 윤리적, 더 철학적, 더 종교적인 사람이 되어 갑니다.
회개는 죄의식이나 허물의식으로부터의 과감한 도전이자 공격입니다. 죄와 허물을 피하는 게 아니라 정면으로 돌파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허물을 드러내놓는 겁니다. 하나님의 눈만 의식하지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개는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사건이 됩니다. 윤리나 철학, 종교와 연결되는 공공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와 관련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정죄가 없이도 회개가 일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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