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오랜 시간 날마다 같이 하고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음식을 같이 먹어도 마음과 말이 통하지 않고 친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 성도들의 교제에 대해 고민이 있습니다.
A. 고민이 느껴지는 질문입니다. 진지하고 정직하다는 겁니다. 근데 질문자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 이웃'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은, 누군가에게 가서 필요한 사람이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와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누군가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답변입니다. give & take 계산을 할 때, 누군가에게 실망을 하게 되고, 관계는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아마 질문자는 '나는 최선을 다해서 교제를 나누고 있는데도 이래요'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해도, 인내가 더 필요합니다. 사실 많은 성도들이 나름의 최선에 자족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인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질문자가 아쉬워 하는 성도들 대부분은 질문자의 더 큰 최선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일 겁니다.
결국 누군가와 친밀하지 못하다는 건, 내가 그 사람을 얻지 못했다는 거와 같습니다. 이해관계가 있는 아랫사람을 얻는 건 쉬울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성도들이나 이웃을 얻는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아마 지금 문자와 가까운 사람들은 질문자가 좋아하는 타입의 사람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타입에 따라 친밀도가 달라지는 걸 두고 '편견'이라고 합니다. 혹 질문자에게 편견이 있지 않나 점검을 바랍니다.
편견이 없는데도 친밀감이 없다면 그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좋아하는 건 자신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기주의자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소견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이런 경우, 열정이나 열심, 경건 조차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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