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 때 나는 공부가 재밌었고 그래서 평소에 열심히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험기간만 되면 공부가 하기 싫었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싫었다.
그래서 시험기간에 태만했고 결국 시험을 못봤다 ;;;;
어떤 친구들은 평소에는 얼이 빠질 정도로 놀다가
시험기간에 밤을 새고 무섭게 집중하더니 결국 나보다 시험을 잘 봤다....
2. 고시촌 장수생들을 ‘고시폐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폐인’이라는 어감 때문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초췌한 사람들일 것 같은데 실상은 오히려 반대다.
규칙적인 공부, 식사, 운동, 친구...
이들은 진정 건강한 수험생활을 하고 있다. 수험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활’을 걸지 않는 나이브함이
그들을 수험가에 오랫동안 붙들어둔다.
3.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1) 철저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2) 시험 직전에 모든 노력을 ‘집중’하여 쏟아 부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삶의 균형을 지키며 ‘우아’하게 준비하고 싶어 한다.
마음이 편하다. 뭔가를 하고 있다. 자라고 있다.
그러므로 ‘언젠가’ 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적당히’는 결코 합격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4. 믿음생활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본다.
분명 ‘초’ 집중해야할 시기인데
문제를 멀리하거나 하나님을 멀리한다.
문제가 앞에 다가오면 평소의 배 이상을 하나님께 매달려야 하는데
평소에 하던 대로 적당히 매달린다.
야곱의 씨름이나, 겟세마네 동산의 ‘처절함’을 볼 수 없다.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거나 그냥저냥 흘러가버린다.
초라한 성적표.. 하나님의 부재.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배웠던가?
평소에 나름 말씀을 배운다고 열심을 내었는데.
실전에서 완전히 무너지고
허무함에 가득차서 결국 말씀을 떠나고 만다.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치고 다시 그물을 손에 잡았던 제자들처럼..
5. 합격해야만 한다. 믿음의 시험에서 합격해야만 한다.
시험이다. 이것을 넘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많이 배웠다. 지식이 늘었다. 그것만으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 문제에서 반드시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는 비장함을 가지고
삶의 균형과 우아함을 내려놓고
문제해결을 위해 오로지
하나님께 집중하자.
그때에 분명 알게 될 것이다.
여기서도
합격과 불합격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또한 지금까지 배운 말씀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진짜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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