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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하나님, 은혜가 사라졌어요' 필립얀시 저
김진이 2015-03-30 추천 0 댓글 1 조회 518

- 책 읽으며 집중과 몰입을 하며 쭉 진도를 빼며 읽어나갈 수 있는 시간들이 제겐 너무 좋았습니다.

- 타는 목마름으로 길을 잠시 잃은 사람들의 좋은 친구,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

은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부_하나의 세상, 하나의 갈증

 

01 큰 분열

- 기독교인들이 타인에 대해 은혜보다는 죄책감을 나누어주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다.

- 무신론자의 비율이 높아지나 이들은 교회는 거부하지만 예수님은 거부하지 않는 사람이 많으며

이들은 악한 사람이 아닌, 목말라하는 사람들, 영적인 집을 찾고 있는 탐구자임을 알 필요가 있다.

- 사마리아인을 반대했던 유대인, 예수의 제자와 달리 사마리아인을 만나시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건네신 예수님을 만난 여인은 은혜를 나누어주는 자가 되었으며

예수님의 승천 후 사마리아인들이 성령을 받는 사건을 볼 수 있다.

* 비기독교인을 보는, 대하는 나의 태도는 어떠했나, 어떠한가., 생각해봅니다.

 

02 위태롭게 된 은혜

- 따분하고, 틀에 박혔고 교회사람들은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며 교리가 편협하다는 인상을 주는 교회,

타인을 단지 회심시켜야하는 표적으로 바라보는 성도들로 인해 위태롭게 된 하나님의 은혜

- 기독교를 경멸하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묵묵하게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며, 잘못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사과하는 것이다.

- 마지막까지 회심하지는 않았지만, 전투적인 무신론자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종교에 대해 다양한 공개토론과 사적인 논쟁을 했지만,

자신을 찾아와 친절과 사랑을 베푼 기독교인이었던 프랜시스 콜린스를

'생존해있는 미국인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하며 그의 사랑을 받아드렸다.

또한, 교회를 비꼬는 영화 상영후 모든 기독교인들과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감독을 향하여

'감독님.,영화 잘 보았습니다. 저는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금까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행해진 모든 일들에 대해 사과합니다.'

순간, 깔깔대며 영화를 보며 격렬한 논쟁을 기대했던 모든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분위기를 바꾸었던

한마디. '사과합니다'

* 묵묵한 사랑과 겸손을 새롭게 시작할, 혹은 더해나갈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03 목마른 영혼

-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을 잘못된 누군가가 아니라,

길을 가고 있지만 방향을 잃은 누군가로 대함이 필요하다.

실제, '잃음' 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보면, 바리새인들의 도덕적, 비도덕적인 사람들을 구별하는

깔끔한 분류체계를 부숴버리고 '은혜' 를 보게된다. 사마리아여인을 향하여, 또한 '한가지 부족한 것'을

지적받고 그냥 가는 청년을 향한 예수님의 태도는 '사랑', 그리고 '연민'이었다.

- 아테네에서 행한 바울의 설교를 보면, 그들의 '알지못하는 신' 에 대한 영혼의 갈급함을 존중하면서

하나님에 관한 더 풍부한 깨달음을 건넨다.

- 비기독교인이어도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목말라한다.

이런 공통적인 선한 직관을 서로 긍정하며, 이것이 어디(하나님)에서 왔는지 사람들에게 짚어줄 수 있다.

* 하나님을 찾으나,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된 친한 친구와의 식사에서

나는 바울처럼 더 풍부한 깨달음을 건넬수 있었던가?

 

04 좋은 소식 되찾기

- 우선, 내가 복음은 정말 좋은 소식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한 사랑으로 시작하여

훨씬 더 좋은것을 가르쳐 준다. 낭만적인 사랑은 모든 사랑의 근원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줄 수 있으며,

가져다준다. 결국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그 삶, 행동으로 전할 수 있는 것이다.

* 타인이 내 삶, 행동을 보고, 좋은 소식, 은혜를 구체화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하니 고쳐야할 것들이

마구 생각이 납니다.

 

 

2부_은혜를 나눠주는 사람들

 

05 순례자들

- 우리, 순례자들은 예수님 승천 이후 '뒤에 남겨진 예수'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자신의 일들을 하시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교회는 은혜를 받는 장소이다. 은혜로 용서받은 사람들을 결집하여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나누어주는 이들로 준비시킨다. 인생의 괴로움을 안고 와서 울 수 있는 장소인데,

서로가 다양성을 인정못하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넓이와 복잡성에 대한 지혜와

끼리끼리의 분위기로 인해 은혜받을 사람들을 오히려 교회가 가로막고 있는 현실을 본다.

* 서울 이기는교회 성도, 가정이 서로의 다양성을 받아드리고 있는지, 같이 얘기해보면 좋겠습니다.

 

06 운동가들

 - U2 밴드의 리드보컬, 보노. '나는 록가수다, 사회 운동가가 아니다.' 라던 이 사람은

하나님께 여러 질문을 던질수록,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그 일들을 시작하라는 말씀을 듣는다.

공연을 통해, 그리고 여러 봉사와 반 에이즈 운동을 위한 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다.

-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땅에서 이루는 임무를 부여받은 대리인이다.

그 중 '그리스도인 운동가' _ 여러 사회 문제에 맞서 여러 활동을 해 나가는 현장의 개혁가들이 있다.

자신이 열등한 이들을 돕는 우월한 존재라고 미묘하게라도 의식한다면 이들의 운동은 위험하며

오히려 적대감을 일으킬 수 있는 함정이 있을 수 있고, 대부분 언론이나 대중의 관점에서

이런식으로 생각되어지기도 하나 실제 이러한 '복음주의 운동가'들을 통해 많은 척박한 땅과

사람들에게 '무언의 희망'이 된다.

- 타국, 혹은 이교문화권에서의 운동뿐 아니라, '주변 문화 안에 신실하게 출석하여 있는 것' 또한

제안한다. 교회는 내가 속한 문화, 지역에서 '세상에 속해 있지만, 속해 있지는 않은, 세

상 문화에 대항하는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 엉망으로 망쳐진 환경에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말씀대로 은혜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길 잃은 세상에서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나타내보여야 한다.  

 

07 예술가들

- 창작은 개인의 삶에 위험부담이 큰 외로운 싸움이다. 그러나 창작 예술이 사람들에게 믿음에

이르는 경로가 될 수 있다. 무신론자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동생 피터 히친스는 미켈란제로의

'최후의 심판'을 보며, 믿음으로 돌아오게 하였다고 한다. 선지자들처럼, 예술가들의 예술은

세상과 많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즉각적인 행동을 자극하는 '채찍역할'을 했다.

또한, 영원한 것을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상기시키는 '잘 박힌 못'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예술의 역할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의 전파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어느때보다 더 필요한 시기이다.

돌로 맞을 위기에 있던 간음한 여인 앞에서, 예수님이 모래위에 무엇인가를 썼던 것처럼

사람들의 삶에 하나님에 관해 생각할 공간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적 일들이 우리에게도 요구될 수 있겠다.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며, 그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는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말이다.

* 바뀔 수 있지만, 현재 큰아이의 꿈이 화가입니다.

작품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은혜를 나눠주는 화가가 되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3부_정말 좋은 소식인가

 

08 믿음은 중요한가

- 인류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목마름은 더해가고 있다.

대부분 이런 현실에서, 사람들은 아이들을 더욱 교육시키고 새로운 사회 제도를 구축하려고 더 열심히

일해야한다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과연 세상의 힘으로 해결이 될 수 있는가?

생각해보면, 과연 그렇지 않음을 알 것이다.

교회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의 갱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초기에는 기독교신앙의 깃발을 들고 사회와의 차별성을 두고 영향을 미치다가

그리스도인들이 번영하고 문화를 주도하는 세력이 되면서 나그네로서의 소명을 저버리고 정착하며

기존 체제와 하나가 되곤한다. 교회역사를 보면 계속 이러한 순환이 반복됨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이러한 순환에 갇히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 밖의 모든 사람을 향한,

교회 밖의 사람들을 위해 존재함을 앎이 필요하다.

복음에 대한 믿음은 우선적으로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며,

더 나아가 사람들로 인해 불완전하나 복음이 남기는 영향력이 있다.

특히, 사회의 약자에 대한 관심의 확산이다.  

 

09 다른 누가 없는가 - 하나님에 관한 질문

-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질문 세가지 중 첫번째, 하나님 이외, 다른 이는 없는가에 대한 질문과 그 답이다.

과학은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들 이상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인간넘어의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기도 하며,

그것이 하나님인줄은 깨닫지 못하나, 정교하게 발견되는 여러 과학현상들을 통해

'하나님'과 같은 절대자,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경외심'을 느낀다.

이런 '경이로움' 이 기독교적 믿음보다는 최근에는 '뉴에이지' 같은 다른 신념으로 흘러가곤 한다.

깊은 통찰을 통해 가장 높은 영적인 지혜란? 자신의 내면에 거한다는 것이라고 결론 맺으며,

철두철미한 제자의 길보다는 자기 성취를 더 선호하게 된다.

모든 여러 종교인들이 '예수'를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존중한다.

존경받는 선생, 하나의 신, 깨달음에 이른 인간, 위대한 예언자, 하나님 의식의 최고봉인 '예수'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자기 낮춤을 실현하여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한

유일하신 분이나,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은 믿지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모든 복음의 좋은 소식은 예수에게 집중되어 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사는 다른 방식을 실증해보이셨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대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들 누구도 예수님의 길을 받아드리지 않을 것이다.

'다른 누가 없는가' 라는 질문에 '예수' 이외의 다른 답이 있는, 그러나 실제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설득력있는, 지혜있고 정교한 삶의 답을 해주어야한다.

 

10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 인간에 관한 질문

-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질문 세가지 중 두번째,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 있는가?

우리는 대중문화를 즐기며, 돈을 벌고,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이루기를 원하며, 일상을 열심히 

살아간다.  자신이 중요해지고 싶은 인간의 갈증은 소비 오락 문화의 발달과 함께 '넓은 길'을 가며

이 넓은 길이 더 많은 것들을 인간의 삶에 제공하니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인간만이 고유하게 갖고 있는

궁극적인 행선지에 과한 의식을 오늘날처럼 비극적으로 상실한 때는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다른 소망을 알고 있다. 예수님이 제공하신 좋은 소식이다.

그분이야말로, 중요해지기를 갈망하는 우리의 갈증을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다.

우리의 노력으로 내가 중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운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인 것이다.

- 어떤 과학자도, 정치인도, 유명인사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듯 하지만,

911테러, 일본의 해일 뿐 아니라, 인간의 많은 사건, 사고 등 죽음의 현장에서

죽음에 관하여 아무 해결책을 주지 못했음을 알고있다.

하나님만이 죽음에 대한 답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겉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므로 우리가 잠깐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6-17)

하늘을 향해 사는 삶, 이것이 우리가 왜 여기 있는 가에 대한 답이며,

이 복음은 현대의 엘리트 집단을 당혹하게 하면서 계속 퍼진다.

- 유대사회의 고상한 기준에 미치지 못한 이들이 예수를 만났던 것처럼,

현재에도 세상의 가치관과 완전히 다른 예수님의 가치관을 받아드릴 수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가난한 심령으로 예수의 복음을 받아드리고 은혜받은 이들이 된다.

은혜받은 이들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산다.

지금 여기 이땅에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덕분이라는 것을 또한 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11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사회에 관한 질문

현대의 문화는 기준이 없기에 도덕 판단은 주관적이다.

옳고 그르다는 것의 판단이 과연 무엇에 근거하는 것인가? 

'자기 자신'이 최고의 선인가? 공리주의인가? '이기적 유전자'를 따라 사는 삶인가?

반면, 죄인, 약한자의 하나님의 권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혼란의 한가운데서

사회에 필요한 지침을 공급할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용기있게., !

 

 

4부_믿음과 문화

 

12 불편한 짝: 그리스도인과 정치인 

성경은 세속 정부를 필요한 제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도로 보지만 신앙의 친구로는 보지 않는다.

이둘의 관계는 한가지만으로 정의되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포함한다.

1) 충돌

- 나치정권하의 그리스도인, 목회자 (마르틴 나묄러, 디트리히 본회퍼)은 히틀러에게 반대할 수 있는

독일의 몇 안되는 사람들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나치정권에 굴복했음을 볼 수 있다.

2) 지혜로운 싸움

- 미국의 초창기 금주법, 건강보험의 확대 등의 역사가 있다.

3) 교회는 정부와 독립된 세력일 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회의 양심 역할을 할 때 가장 잘 기능한다.

교회가 문화 자체를 개혁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게되면 은혜의 복음을 흐릴 수 있고

또 하나의 정치적 집단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

 

13 거룩한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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